외부언론등등

자유게시판

조회 수 14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http://www.okja.org/asia_dong/12849

[특파원 리포트]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재언협 러시아 지역 회의 및 유럽 지역 회의 공동 주관으로 사흘 동안 진행된 뒤 1월 7월 목요일 저녁 성황리에 폐막돼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icon_mail.gif 기사입력 2016/01/10 [14:57]
 
 
【Seoul(Korea)=Break News GW】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참석 차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에 나섰던,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1월 9일 토요일 오전, 대한항공 KE 924편으로 인천 국제 공항을 통해 일시 귀국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는 1월 23일 토요일까지 고국 현지에서의 취재 활동을 계속 이어 갈 예정이며, 2015-2016학년도 제2학기 몽골 학사 일정에 따른 몽골 캠퍼스 개강에 맞춰 1월 말 몽골 현지로 복귀한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아, 재외동포언론인협회(OKJA=Overseas Korean Journalists Association, 약칭 재언협, 회장 김훈 영국 유로 저널 대표) 주최로 러시아 모스크바 현지 시각 1월 4일 월요일부터 사흘 동안 개최됐던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가 1월 7월 목요일 저녁 성황리에 폐막됐다.

당초, 러시아 현지 시각 1월 4일 월요일 오전 모스크바 시내 코르스톤 플라자 호텔(Korston Plaza Hotel)에서 예정돼 있던, 본 대회 개막식은, 참가 회원들의 항공기 도착 지연으로 인해, 1월 5일 화요일 저녁 코르스톤 플라자 호텔(Korston Plaza Hotel) 옆 서울 레스토랑에서 저녁 6시부터 거행됐다.

 
2016011011452632.jpg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개막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개막식에서는 김상욱 카자흐스탄 한인일보 대표와, 블라디미르 수린(Dr. Vladimir Surin=Владимир Сурин) 러시아 주요 사회 문제 연구소 소장의 강연이 진행됐다.
 
2016011010492363.jpg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개막식 현장. 김상욱 카자흐스탄 한인일보 대표(재언협 부회장)가 강연에 나섰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첫 번째 연사로 나선 김상욱 카자흐스탄 한인일보 대표는 ‘러시아(⟵옛소련)로의 한민족 이동사’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한민족의 러시아 입국은,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 지역이 러시아 지역이 돼버린 세계 정세 속에서, 1864년도(러시아 기록)를 기원으로 해서, 조선 사람들이 농사를 잘 짓기에, 봄에 러시아에서 농사를 짓고 한반도로 되돌아오곤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고 전제하고, “흔히들, 2015년을 한-러 수교 25돌이라 일컫고 있으나,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시발로 체결된 한-프 수교가 2016년으로 130돌이 되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것은 형평성에 안 맞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6011018173028.jpg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개막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요컨대, 한-러 수교 시점이, 1990년이 아닌, 조-러 통상 조약이 체결됐던 1884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한 분단이라는 미묘한 정치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서, 본 기자의 생각으로도, 향후 반드시 바로잡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5112346532553.jpg

한편, ‘남북한과 러시아 관계의 현황’에 대한 강연에 나선 블라디미르 수린(Dr. Vladimir Surin=Владимир Сурин) 러시아 주요 사회 문제 연구소 소장은 “러시아 시베리아 자원 개발을 통해 한-러 공생(共生) 국가를 만들어 가자”는, 지난 2005년에 발표한, 이른바 ‘코리아 선언’으로 알려진, 논리를 전개해 참가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2016011030401392.jpg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개막식 현장. 블라디미르 수린(Dr. Vladimir Surin=Владимир Сурин) 러시아 주요 사회 문제 연구소 소장이 강연에 나섰다. 오른쪽에 박종권 러시아 겨레일보 대표(재언협 부회장)가 순차 통역을 맡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수린 박사 주장의 골자는 “현재, 광활한 영토를 보유한 러시아는 인구 감소라는 당면 문제를 갖고 있으며, 세계적인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자원 문제 해결이 당면 과제이다. 고로, 지역적으로 가까운 한-러 두 나라가 공생 관계를 맺을 경우, 대한민국은 자원 문제를, 러시아는 인구와 생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야말로 근사한 논리이다. 하지만, 정신이 올바로 박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수린 박사의 이런 논리에 이렇게 반박할 수 있겠다. “아니, 수린 박사! 러시아가 급격한 인구 감소로 국가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고 칩시다. 그래서, 향후, 러시아가 영토를 보존하고 미래에 살아 남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총력전에 나섰다고 칩시다. 그런데 말이요, 지구촌 그 많은 국가들 중, 왜, 유독, 하필이면, 그 파트너가 대한민국이어야 하나요? 답해 보시오!”

이에 대해, 수린 박사는 탄탄한 오필수불가결론(五必須不可缺論)으로 맞선다. “그 첫째 곡절은, 한반도와 러시아는 국경을 마주한 이웃 국가(현재는 북한에만 해당)이기 때문이요, 그 둘째 곡절은, 한민족 인구 규모가 적절해 한-러 공생 국가 건립에 적절한 규모이기 때문이요, 그 셋째 곡절은, 대한민국 사람은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은 고급 인력이기 때문이요, 그 넷째 곡절은, 대한민국 경제가 천연 자원이 없는 수출 경제 체제이기 때문이요, 그 다섯째 곡절은, 고급 기술과 경영 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러시아의 우주 기술을 포함한 첨단 기술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국가로, 제격(格)이기 때문이다.”

 
2016011031146558.jpg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개막식 현장.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블라디미르 수린(Dr. Vladimir Surin=Владимир Сурин) 러시아 주요 사회 문제 연구소 소장과 굳건히 섰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요컨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인구가 7,000만 명 정도이므로, 중국처럼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러시아 민족을 흡수해버릴 가능성이 없기에 민족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고, 대한민국 사람의 두뇌와 교육 수준은 현재 러시아로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는 중앙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에 비해 훨씬 높기에,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은 천연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와 연계해 자원 문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본 기자는, 강연을 마친 블라디미르 수린(Dr. Vladimir Surin=Владимир Сурин) 러시아 주요 사회 문제 연구소 소장과 만나, "혹시, 몽골 방문 경험이 있는가?"를 물었다.
 
지난해 2015년 5월 26일 화요일,  50여명의 몽골 주요 인사들이 주축이 돼 창설된, 몽골 현지의 「한반도 통일 지지 몽골 포럼 」(MFKU=Mongolian Forum for Korean Unification, 대표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몽골 초대 대통령)과의 연결 고리를 어떡하든 모색해 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수린 박사의 몽골 방문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향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의 본 기자와 그와의 재회, 그리고 바로 이 재회를 통한 그의 폭발적인 역할이 기대된다.

왜냐. 몽골과 러시아는 공히, 남북한 통일을 통한 동북 아시아의 평화를 희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수린 소장 약력
▲러시아 모스크바 교육 대학 졸업.
▲러시아 독서 신문 발행인 역임.
▲러시아 외교부 정책 자문역 역임.
▲2005년 11월 러시아 정치 평론지에 ‘코리아 선언’ 주창.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국, 한반도 정책에 수린 소장 주장 유념 계획 통보(2006. 01)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참석자(지구촌 7개국 11명)
▲독일 1명 남정호(독일 뮌헨, 영국 유로 저널 고문) ▲러시아 5명 김원일(러시아 모스크바, 모스크바 프레스 대표), 박종권(러시아 모스크바, 겨레일보 대표), 변성로(러시아 모스크바, 우리신문 대표), 윤동주(러시아 모스크바, 우리신문 편집국장), 이주섭(러시아 모스크바, 매일신보 대표) ▲몽골 1명 강외산(몽골 울란바토르, 브레이크 뉴스 몽골 특파원) ▲미국 1명 김명곤(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코리아 위클리 대표) ▲영국 1명 김훈(영국 런던, 영국 유로 저널 대표) ▲카자흐스탄 1명 김상욱(카자흐스탄 알마티, 한인일보 대표) ▲프랑스 1명 이석수(프랑스 파리, 프랑스 존 대표).

 
2016011030219475.jpg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개막 D-1에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남쪽에 위치한, 박종권 재언협 부회장 소유의 러시아 현지 다차(Dacha=Дача, 한국어로는 '별장'을 뜻함)에서 열린 환영 만찬 자리에 (앞줄 왼쪽부터) 변성로(우리신문 대표), 김명곤(코리아 위클리 대표), 김상욱(한인일보 대표), 남정호(유로 저널 고문), (뒷줄 왼쪽부터) 이석수(프랑스 존 대표), 윤동주(우리신문 편집국장), 이주섭(매일신보 대표), 강외산(브레이크 뉴스 몽골 특파원), 박종권(겨레일보 대표)등의 참가자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유감스럽게도, 교통 체증으로 늦게 온, 김원일 모스크바 프레스 대표(재언협 정책 위원장)가 사진에서 빠졌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수교 이전의 대한민국-러시아(옛소련) 관련 일지
▲1973. 06. : 소련, 국제연극협회 총회 및 유니버시아드 대한민국 관계자에게 첫 입국 허용.
▲1978. 04. :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소련 무르만스크 남쪽 200마일 빙판에 강제 착륙.
▲1978. 06. : 소련, 무르만스크 착륙 대한항공(KAL) 여객기 기체와 기장-항법사를 제외한 탑승자 전원을 송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특별 담화를 통해 사의 표명. .
▲1978. 09. : 신현확(申鉉碻) 보사부 장관, 대한민국 각료로는 처음으로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참석차 소련 입국.
▲1979. 04. : 한-소 국제 전화 개설.
▲1982. 07. : 서울 국제의원연맹(IPU) 70차 총회에 앞서 사전 준비 차 소련국제의원연맹(IPU) 임원 코브리첸코 방한.
▲1983. 09. : 대한항공(KAL) 여객기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한 피격으로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대한민국,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소련의 사과 및 보상 요구.
▲1988. 01. : 소련, 서울 올림픽 참가 공식 발표.
▲1988. 07.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7.7선언-남북한 상호 교류-이산 가족 상호 방문 등 제의.
▲1988. 08. : 박철언(朴哲彦) 대통령 정책 보좌관, 극비 소련 방문, 수교 교섭 개시.
▲1988. 08~10. : 1988 서울 올림픽 관련 소련 영사단 체한.
▲1988. 09. : 그라모프 소련 체육부 장관 방한. 고르바초프, 크라스노 야르스크 연설.
▲1988. 10.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유엔에서 동북아 평화 강조 연설.
▲1989. 03. :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 태국 방콕 아태경제사회위원회 총회 기념 리셉션에서 리가초프 소련 외무부 차관과 접촉.
▲1989. 04. : 소련상공회의소 서울 사무소 개설. 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 사무소 개설.
▲1989. 06. : 김영삼(金泳三) 민자당 총재 소련 방문, 김현욱(金顯煜) 국회 외무통일위원장 일행 사할린 방문.
▲1989. 07. : 모스크바에서 한-소 영사 관계 협의 제1차 회담.
▲1989. 10. : 루카시 소련 체육부 차관 방한.
▲1989. 11. : 싱가포르 한-소 영사 관계 협의 제2차 회담. 한-소 영사처 교환 설치 합의 정식 발효.
▲1989. 12. : 김집(金潗) 체육부 장관 소련 방문.
▲1990. 02. : 주모스크바 영사처 개설.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 한-소 외무부 장관 회담 제의.
▲1990. 03. : 공노명(孔魯明) 초대 주소련 영사처장, 모스크바 부임. 한-소 정기 항공 노선 개설 합의.
▲1990. 03. : 김영삼(金泳三) 민자당 최고위원, 박철언(朴哲彦) 정무 장관 등 고위 당-정대표단 소련 방문. 김(金) 최고위원,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면담. 수교 원칙 합의.
▲1990. 04. : 파누코프 소련 민간 항공부 제1차관 방한. 유종하(柳宗夏) 외무부 차관, 뉴욕 유엔 경제 임시 총회 참석 중 오브민스키 소련 외무부 차관 접촉. 아간 베갼 소련 대통령 경제 고문 방한.
▲1990. 06.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첫 정상 회담.
▲1990. 06. : 한국무역협회 대표단, 모스크바에서 소련 상공회의소와 업무 협정 체결.
▲1990. 08. : 김종인(金鍾仁) 대통령 경제 수석 비서관, 소련 방문, 수교 및 경제 협력 문제 협의. 김종휘(金宗輝) 대통령 외교 안보 보좌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도브리닌 소련 대통령 외교정책 보좌관과 단독 요담.
▲1990. 08. : 로엔그림 예피모비치 예레멘코 초대 주한 소련 영사처장 부임.
▲1990. 09. :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부 장관, 중국-북한-일본 3개국 순방.
▲1990. 09. :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한-소 수교 관련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에 중요 지침 시달. 최호중(崔浩中) 외무부 장관, 유엔에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외무부 장관 회담 갖고 양국 수교 합의 의정서 서명.

뱀발 : 사증(Visa=비자) 없이, 한때 소련으로 불렸던 러시아 땅을 다시 밟았던 것은 참으로 두고두고 유쾌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본 기자가 러시아 영토를 다시 밟은 것은 지난 2014년 1월 러시아 이르쿠츠크 방문 이후 2년 만이었다.

한때 러시아 시인 마야콥스키가 10월 혁명의 감격 속에서 '보라, 그리고 부끄러워하라. 나는 소련의 시민이로라' 라고 노래한 것을 기억한다. 그러고 나서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본 기자는 그 혁명의 빛 바랜 이념, 그것이 갖고 온 경직된 체제, 그 모두를 바탕으로부터 바꾸는 또 다른 러시아의 혁명과 만나고 있다. 21세기의 러시아의 새로운 혁명은 신선한 이상으로 지구촌을 변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를 자유롭고 다원적인 민주 사회로 이끌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각 개인의 성취 동기는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이 지구촌 사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대한민국보다 200배가 넘는 광대한 국토와 여기에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달과 우주를 정복하는 첨단의 과학 기술과 세계 초강대국의 하나가 된 국력을 갖고 있다. 러시아에는 위대한 문학과 음악, 사상과 학문, 찬란한 러시아 문화를 창조한 힘과 높은 자질의 국민이 있다. 러시아 국민은 뭉친 힘으로 숱한 외침을 막았고 제1차,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와 세계 문명을 지켰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가 되는 본 러시아 방문을 본 기자는 러시아 시인 푸시킨이 노래했던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인다. 왜냐. 한-러 관계의 정상화는 우리 한민족에게 그토록 큰 고통과 비극을 가져다 준 냉전 체제의 종막을 뜻하는 것은 물론, 전쟁과 분단의 땅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재촉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러시아(옛소련 시대 포함) 사이에는 1990년 9월 30일 수교 이전까지 86년 간의 단절의 시대가 있었다. 왜냐. 식민 세력의 침략과 냉전 체제의 대결이 지구촌을 휘감았었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 미-러(정확히 말하자면 미-소) 두 나라는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른 북위 38도를 따라 분단 선을 그었다. 이 선이 남북한 우리 동포와 한-러 두 나라 국민 모두를 서로 가르는 높은 벽으로 굳어졌다.

한반도의 얼어붙은 휴전선을 마주하여 남북으로 갈라진 한민족 수백 만의 부모, 형제, 자매, 친척들은 서로 오갈 수도 없고 전화 한 통화, 편지 한 통 주고 받지 못했고, 그들의 거처나 생사마저 알 수 없었다.

한-러(정확히 말하자면 한-소) 두 나라도 서로 장벽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는 공산권 진영을 이끄는 나라로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진영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로 서로 반목, 대결하는 관계가 이어져 왔다. 이러한 대결 구도로 따라 거대한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는 작은 대한민국에 위협을 주는 나라로 인식되었고 대한민국과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 사이에는 불행과 불상사도 있었다.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의 스탈린 통치 시대에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 6.25사변이 일어났고, 1988년에는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옛소련) 공군기에 의해 우리 민간 여객기가 피격(이 생각을 하면 피가 끓어 오른다)을 당한 바 있다. 이것은 냉전의 지난 시대에 빚어진 일의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제 한-러 양국은 어두웠던 지난날의 불행을 딛고 이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가고 있다. 한-러 사이의 새로운 시대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이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대한민국의 북방 정책과 페레스트로이카가 합치하는 공동의 철학에 바탕하고 있다.

교류의 길이 열리면서 두 나라 국민이 서로 오가고 있다.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입장했던 러시아(정확히 말하자면 소련) 선수단은 대한민국 국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서울 방문을 통해 이뤄진 볼쇼이 발레단과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 교향악단의 대한민국 공연은 그 뛰어난 예술성에 대한 갈채와 새로운 친구에 대한 기대로 성황을 이룬 바 있다.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모든 러시아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의 따뜻한 우의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를 찾는 대한민국 국민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 스스로 이번 러시아 방문은 위대한 국민, 위대한 문화와의 만남이었다.

한반도의 첨예한 대결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에 핵심적인 과제가 되어 왔다. 한-러 두 나라가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은 이 지역에 평화와 협력의 질서를 촉진하는 관건일 것이다. 대한민국으로부터 일본, 동남 아시아와 호주에 이르는 태평양의 서안은 넘치는 활력으로 세계의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살며 세계 무역의 40퍼센트 이상, 세계 총생산의 50퍼센트 이상이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이 지상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았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향은 분명하다.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남북한이 교류 협력하는 관계를 이루면 같은 민족 간의 화해는 빠른 속도로 진전될 수 있다. 남북한의 같은 동포 간에 오가는 길이 열리면 공동체 의식과 강한 결집력으로 평화 통일의 여건이 무르익을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오랜 폐쇄 노선으로부터 나와 대한민국과는 물론 국제 사회와 협력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왜냐. 이 세계에 넘치는 개방과 개혁의 물결을 북한만이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러 우호 관계여! 영원하라!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Copyright ⓒBreak News G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k1_left_t.gif k1_right_t.gif
 
2012060402216889.jpg
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