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3> 4월 29일~30일 연해주 소수민족 탐방

by 관리자 posted Oct 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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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30일 김현동 처장님, 강니꼴라이 선생님, 김승력 국장님과 함께 소수민족 조사를 위해미하일로프카에 갔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아르세니예프, 까발레로보, 올가를 거쳐 총 길이 460km에 이르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미하일로프카라는 마을 입니다. 우정마을의 미하일로프카와 이름은 같지만 엄연히 다른 마을입니다.
오전 10시에 출발했는데 미하일로프카에 도착하니 시계는 어느새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이곳의 해는 9시나 되어야 지기 때문에 여유있게 마을 곳곳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미리 약속해 놓았던 마을 주민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은 현대식이었고 한국 제품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습니다. 주인아저씨의 따뜻한 차이와 함께 마을의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아저씨가 말씀하시길 현재 마을에는 총 80여 가구가 있으며 혼혈이 많다고 합니다. 과거 나나이족은 주로 어로생활을 우데게이 족은 사냥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따즈라는 종족이 있었습니다. 따즈는 타지에서 온 사람, 중국에서 온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계속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해서 알아내야 할 사항 입니다. 지금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우체국, 학교, 도로, 전기등 국가에서 월급을 주는 일에 종사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사냥을 하고 있으며 농업은 텃밭에서 식구들 먹을 정도만 한다고 합니다. 사냥은 국가에서 허락받은 직업이라고 합니다. 우스리스크에 사냥협회가 있으며 일정의 회비를 내면 사냥 기간과 잡을 수 있는 동물과 수에 제한을 두고 허가를 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몸이 아플 때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돈을 태우며 비는 신앙이 아직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를 알았습니다. 1937년까지 이 곳이 고려인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소수민족을 조사하려는 처음 목적과 달리 전혀 예상치 못한 과거 고려인 마을과의 만남에 모두들 상기 된 듯 했습니다. 소련은 강제 이주 후 비어있는 마을에 나나이, 우데게이, 따즈등 여러 소수 민족을 이주 시켰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차이를 마시고 마을 주변을 탐색 해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마을 주변을 다녀보니 곳곳에 맷돌, 절구 그리고 구들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우선 우리의 모습과 정말 비슷하게 생긴 마을 입구에 사시는 아저씨 한분을 만나봤습니다. 자신을 따즈라고 소개하시는 아저씨는 차를 수리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사냥을 주로 하는지 곰 가죽을 깔고 있었습니다. 창고에 들어가니 더욱 많은 곰 가죽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무척 귀하게 여겨질 곰 가죽이 이렇게 바닥에서 아무렇게 험하게 쓰여지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역시 소유란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께 과거 고려인 마을에 대해 물어보니 자신도 얼마 전까지 구들방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래전에 땅 속에서 발견한 것이라며 고려인이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끼를 한 자루 보여줬습니다. 또한 지금 두부, 콩나물, 된장, 춘장 비슷한 음식을 해먹으시고 사돈이 고려사람 이라고 합니다. 

마을쪽으로 조금 더 가니 이 지역에 오래 사신 할머니 한분이 집 주변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말로는 이 마을에는 우데게이와 나나이족은 더 이상 없고 50%는 따즈족이고 50%는 러시아인이라고 합니다. 맷돌은 예전에는 곳곳에 있었으나 마을 사람들이 필요 없는 돌이라 생각해서 다 갖다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얼마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맷돌을 사용하시고 계시는 할머니가 있다길래 그 집에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는 주로 옥수수를 가는데 맷돌을 사용하시며 날이 무뎌지면 갈아서 계속 사용한다고 합니다.

 처마아래 매달려 있는 연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연어는 올가 근처의 바닷가에서 잡았는데 지금도 6~7월이면 여기 근처 강까지 연어들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개인당 2마리로 잡을 수 있는 수가 제한이 되어 있으며 산란기에는 금지 되어있다고 합니다. 이곳 역시 나무가 점점 많이 베어지면서 숲이 머금을 수 있는  물이 줄어들고 자연히 강물도 줄어들면서 연어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낮에 올가 근처 항구에 쌓여있던 대량 목재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인가 봅니다. 

끝으로 마을 회관의 역할을 하는 건물을 찾아 갔습니다. 그 곳에는 작은 박물관, 공연장, 도서관등 시설이 설비 되어있습니다. 거기서 사서로 보이는 여성분이 친절히 여러 정보를 안내해주었습니다. 특히 제정 러시아 시절의 극동탐험가 였던 아르세니예프와 그의 나나이족 친구 데레수잘라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연해주의 소수민족 모임 사진에서 갓을 쓴 우리의 선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을회관 직원에게 우리가 궁금해 하던 따즈의 어원에 대해 물으니 마을회관 직원 역시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도 각종 정보와 문화재를 잘 보존하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자칫하면 소홀히 하기 쉬운 정보인데도 하나하나 보존하고 기록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마을 회관까지 탐방을 마치고 피곤해 지친 우리 일행들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와 대화를 했습니다. 저도 러시아를 모르고 주인집도 한국어를 모르니 영어로 대화를 했습니다. 한국에 대해 채식에 대해 그리고 가정사에 대해 서로 짤막한 영어 어렵게 대화를 했지만 뜻은 통했습니다. 그리곤 아침 일찍 마을을 한번 둘러봤습니다. 주위에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은 안개로 가득차 있어서 포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을은 안개를 병풍 삼아 폭 안겨 있는 듯한 형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미하일로프카 탐방을 하고 우정마을이 있는 또 다른 미하일로프카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모두들 많은 의문과 생각에 휩싸인 듯했습니다. 

우정마을로 돌아오는 긴 시간동안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비록 이틀의 짧은 시간이지만 저에게 충분한 화두를 던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곳까지 고려인들이 올 수 있었을까? 그들은 무슨 연유로 그 곳까지 갔을까? 이렇게 깊은 산골의 고려인까지 강제이주 시키는 소련은 어떠한가? 왜 그랬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개인마다 민족마다 국가마다 서로 다를 뿐인데 다름을 옳고 그름으로 생각해서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음이 끝을 잡고 이어지고 답을 찾으니 끝이 없다. 그리고 역사를 아는 것, 나의 뿌리를 아는 것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나의 정체성을 아는 것,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면서 더욱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과거를 통해 지혜를 배우는 것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추측과 의문만을 남기면서 왔습니다. 어느새 점점 더 많은 의문에 빠지는 나의 모습을 자각 할 때쯤 어느새 우정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의 짧은 탐방을 통해 그리고 사라져가는 소수민족을 보면서 어느 민족이든 소중하지 않은 민족은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그 민족이 소수일지라도 존중해야 하고 이해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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