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8> [아시노브까의 고려인들] 김 아나똘리 아저씨!

by 관리자 posted Nov 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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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노브까의 고려인들] 김 아나똘리 아저씨!

 
             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듬직한 똘리아저씨~
 

 

 

 1962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김 아나똘리 블라지미르비취"아저씨를 우리는 아나똘리 또는 똘리 아저씨라 부른다.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 지셔서 가끔(?) 나이들어 보이지만 우리 아시노브까 유부남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다. 나의 어머니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인지 왠지 모르게 우리 아버지와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끔 똘이라 잘못 부를 때면 똘이 장군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 )


 아저씨가 5살 되던 해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옛 이야기는 전혀 모르신다. 다만 아버지께서 빨치산스크에서 태어나셨고, 어머니는 어디서 태어나신지 모르지만 스탈린 강제 이주 당시 카자흐스탄으로 가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16살 되던 해에 우즈베키스탄 쁘라브다(칼 호스)에서 1년간 일 하시면서 모은 돈으로 동생들을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데리고 오셨다고 한다.


짐작하건데 똘리 아저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쁘라브다 칼 호스에서 만났을 것이다.


 똘리 아저씨가 살았던 쁘라브다 라는 지역은 7개의 구역(우차스)로 나눠져 있는데 1, 2, 3구역에 고려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스꼴라에서는 28명 정도가 한 클래스 인데 6~7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고려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고려인이 아닌 6~7명도 고려말을 할 정도라고 한다. 아저씨 집은 1 구역(우차스) 안에 있었는데 9개의 거리(울리쨔)가 있었고 약 500여 가구가 있으며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행정의 중심지 였던 거 같다.


 똘리 아저씨 가족은 큰 형님과 큰 누이, 똘리 아저씨, 여 동생, 남 동생 이렇게 다섯 남매이다 . 큰 형님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일하고 계시고, 큰 누이와 여 동생, 남 동생은 우스리스크에서 살면서 기타이바쟈르(중국시장)에서 식당을 하신다. 곧 큰 누이는 아시노브까로 이사올 예정이다.


 슈꼴라(러시아에서 학교를 부르는 말)에서 10년 동안 학업에 정진 하셨는데 2년 간 외국어로 고려말을 배웠다고 한다. 고려말을 가르켜 주시던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못 배웠다며 아쉬워하셨지만 현재 우리 마을에서 가장 고려말을 잘 하신다. 또한 한국어 수업에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아보인다.

 

 슈꼴라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셨는데(수의과) 1년 다니다가 때려치우셨다고 아저씨는 말 하셨다. 그 뒤 곧 바로 군대에 입대 하셨는데 레쟈니 지역의 레즈스크 마을에서 근무 하셨다. 아저씨가 복무한 군대는 공군으로 이곳에서 비행기 고치는 기술을 배우셨다고 한다. 이후 우즈벡 타슈켄트 지역에 국영 비행기 제작소(?)에서 6년간 일 하셨고, 이후 우크라이나로 농사 일을 하러 가셨다.(1990년~2004년) 당시 수박, 토마토, 파 등을 벨라루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팔았으며 초창기에는 소비에트연방 시절이라 왕래가 자유로와 돈 벌기가 쉬웠다고 한다. 지금은 돈 벌기가 바쁘다고 말하시지만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를 보면 분명 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1995년 우크라이나에서 이라 아주머니를 만나셨고, 결혼식과 신혼여행도 없이 무작정 살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돈을 벌면 꼭 한국에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는 아저씨의 소원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슬하에는  리자(2002년생), 다니엘(2004년생) 이렇게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글 읽기를 잘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그런 바램이 있어서 인지 가끔 센터에서 러시아 동화책을 가져 가셔서 읽어주는 멋진 아버지이다.


 러시아로 오는 것은 우스리스크에 사는 누이들과 사촌들이 있어서 쉽게 결정하신 듯 하다. 기차를 타고 일주일간의 대장정으로 우스리스크에 오셨고 오자마자 누이들과 다 함께 살았으나 동북아평화연대의 도움으로 현재 아시노브까에 집을 얻어 살고 계신다.


앞으로 집에서 소와 닭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아저씨는 소원이 무엇이냐 물어보니

'온판 집이 좋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셨다.


처음 연해주 지역에 와서 돈을 벌기 위해 할 줄 모르는 일들도 찾아서 하셨다는 아저씨는 책임감 있고 듬직한 가장이다. 그런 아저씨의 앞 날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 아시노프카 센터지킴이 구태희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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