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0> 재외동포열전 2

by 관리자 posted Nov 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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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열전2 -최재형(1860.8.15-1920.4.5)

 1860년 8월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을 따라 만주를 거쳐 러시아로 이주하였다. 이주 후 11살의 어린 나이로 무단가출하여 선원 생활과 상업 활동에 종사하며 러시아말과 풍습을 익히며 생활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한인 노동자들 간에 통역과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군용도로 건설공사 등 관급사업을 맡아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인심을 얻어 한인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 정책이 본격화되자, 의병운동을 후원하며 국권수호운동에 나섰다. 1908년 동의회를 조직하여 이범윤 의병부대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지원했으며, 동포신문인 <대동공보> <대양보>의 사장으로서 재정 지원을 하며 동포사회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특히 1917년 러시아 혁명 후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 의원,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등으로 활약하며 한인들의 통합과 진보적 민족주의 활동을 펼쳐갔다. 그리하여 1919년 4월 상해에서 성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4월 연해주 지역의 러시아 혁명 세력과 한인 독립운동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일본군에 의해 대대적인 한국인에 대한 체포, 방화, 학살 만행 등의 ‘4월 참변’이 자행되었다. 이때 최재형 선생도 일본군에 의해 납치되어 4월 5일 피살, 순국하였다. 최재형 선생은 국권을 상실한 조국을 위해 투쟁하다 비참한 최후를 마쳤으나, 재러 한인사회에서 ‘한인사회의 개척자’, ‘러시아 한인사회의 제일 인물’,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추앙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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