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바람개비

by 관리자 posted Sep 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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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면 두고 온 딸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시니 마음이 여간 짠한 게 아니다. 그런 그 분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볼 때마다 살갑게 안부를 여쭙는 정도다.

“할머니, 저 내일 심양 가요.”
“왜래? 왜 가네?”
“심양 소중학부 아이들과 독서 수업하러요.”
“그래 좋은 일 하네.”
라며 평소 말 수가 없으신 분이 그 뒤로 심양 자랑을 한참이나 하셨다. 할머니 고향 얘기에 주위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거기도 그래요? 와~” 먹고 사는 것, 입는 것 모두 다 우리와 다를 게 없다는 말에 동네 사람들은 못 믿어하며 놀라는 눈치다.
 실은 조선족하면 불쌍한 시선과 불법체류자라는 의심부터 하는 우리네 생각으로는 그럴 만도 하다. 한 골목에 살면서도  햇살이 할머니가 쉽게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온 것도 같은 이유일거다.

이번 중국 독서 캠프는 심양으로 간다.
햇살이 할머니가 날마다 그리워하는 심양으로...
연길, 하얼빈, 그리고 심양. 내겐 벌써 이번이 세 번째 봉사다. 그 사이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린 딸을 두고도 멀리 심양에서 기다리고 있을 우리 반 17명의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은 이번에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일까. 강경남 팀장님이 정말 괜찮겠냐는 말에 더 씩씩하게 준비해 갈 수 있었다.

 우리말 보급이라는 거창한 사업 목적이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 우리 아이들과 함께 우리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한국 아이들과 달리 그 곳 아이들은 책 한권을 받아 들고도 얼마나 감사하며 읽는지 모른다. 그 순수함에 더욱 내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



군걸이가 캠프 당일 우리 교실에 배정 되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참가 학생 명단에 없어 책을 줄 수가 없었다. 캠프 기간 동안 두 권의 책을 읽기로 했기에 다른 친구들과 나눠 보자고 달랬지만 눈물을 글썽여 못내 미안했다. 매번 여유 있게 준비해 가도 늘 모자라서 안타깝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동포 아이들에게 캠프의 인기가 더해 감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향선이는 유독 내성적이라 캠프 내내 혼자서 밥을 먹어 무척 마음이 쓰였다. 한국에 나가 있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도 공부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다.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와서 피곤할 만도 한데 1교시 수업부터 열심이다. 캠프가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옆에 앉아 밥을 먹으니 다른 친구들도 둘러앉았다. 향선이의 웃음을 그제야 처음 볼 수 있었다.

 경숙이는 집이 멀어 캠프 마지막 날에 있는 발표회도 못 하고 먼저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 반 합창곡을 연습할 때 목소리가 예뻐 박우진 작곡가 선생님이 독창을 시키자고 했지만, 다른 아이를 꼽을 수밖에 없어 무척 아쉬워했다. 가기 전에 내게 조용히 와서 고맙단 인사를 하며 눈물을 보여 나 또한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엉엉~ 올해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 꼭 물고 있었는데...
 
 균주는 연길 독서사 선생님이 데려 온 아이다. 한국으로 치면 한우리와 같은 독서논술 학원에 다닐 정도로 책을 좋아하고 작문을 잘 하는 아이란다. 그런 아이가 글은 쓰지 않고 둘째 날 심양 박물관을 다녀와 탐방 북을 만들고 있는데 저 혼자만 다른 걸 만든다. 살짝 얄미워 혼을 내줄까도 했다가 활동주제에 맞게 아이의 창의력을 존중해 주기로 하며 간신히 눈감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며 내게 내민 바람개비 하나. 두툼한 종이임에도 네 개의 날개를 접어 올린 모양이 제법 종이접기 손놀림이 있어 보인다. 고맙다는 글과 함께... 탐방 북 만드는 시간에 만든 거란다. 그 날 안 혼내길 참 잘했다.

 지금 내 딸아이가 그 바람개비를 돌리며 놀고 있다. 후후~ 몇 번 입으로 불어보더니 잘  안 돈다고 떼를 쓰며 운다.
“세린아! 바람개비를 돌리려거든 바람을 기다리지 말고, 이렇게 바람이 부는 곳으로 힘껏  달려가 봐.”
순간 내 가슴에 자리 잡은 바람개비를 돌리러 나는 멀리 중국에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로 힘껏 달려가 본다.

 햇살이 할머니가 왜 햇살이 할머니로 불리는지 알았다. 심양에 있는 딸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단다. 그 아이 태명이 햇살이란다. 다음 달에 드디어 한국에 온다니 참으로 잘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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