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꿈을 찾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글·사진)
“아이들이 너무 달라졌어요.”
부천교육지원청에서 교육복지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임학림 교사는 26일 지원청에서 다시 만난 중학생 25명의 변화된 모습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 학생들은 부천교육지원청(교육장 한영희)과 시민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이사장 도재영)가 함께 주최한 ‘햇살나눔, 다문화 국제교육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경계에서 꿈을 찾다’라는 이름으로 지난 16~21일 진행된 이번 교육프로그램은 중국 동북3성의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 연변 등지를 돌아보고 라오닝성의 환인조선족중학교 학생들과 교류하는 내용으로 짜였다. 임 교사는 이 프로그램에 인솔자로 참여해 아이들과 여행을 마친 뒤 4일 만에 다시 후속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해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무엇보다 5박6일간의 여행 뒤 밝게 변한 아이들의 모습이 맨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역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다문화 가정과 취약계층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최초 국제교류 프로그램이다. 임 교사의 노력도 있었지만, 부천시에서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진 것은 부천시교육지원청은 물론 시와 지역사회 전체가 마음을 하나로 모은 결과였다.
임 교사가 동북아에서 동포 관련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온 시민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와 함께 짠 프로그램에 대해, 부천교육지원청 한영희 교육장이 적극 지지의사를 밝혔다. 부천시 또한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 지원을 떠맡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부천시는 이미 내년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국제교류 예산도 확정해놓은 상태다.
임 교사는 면접을 통해 조선족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 탈북자 가정,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계층 아이들 등 25명의 참가가 확정된 뒤에는, 이들의 첫 해외 교류활동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의 안전문제 등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사진. 임학림교사>
임 교사가 이렇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쏟은 것은 다문화, 취약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몇 년 전 설문조사 결과가 너무나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장래 꿈을 묻는 질문에 한 학생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싶다고 답을 했더라구요.”
그 대답이 다문화, 취약계층 아이들의 평소 말 없는 표정들과 겹쳐졌다. 임 교사는 교육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이 바로 ‘교육복지’의 핵심 내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의 제목을 ‘경계에서 꿈을 찾다’라고 정한 것도, 바로 경계선상에 서 있는 아이들이 또다른 경계선상에 있는 중국 조선족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꿈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 을 담은 것이다.
사실 임 교사가 부천교육지원청에서 일하는 가장 큰 이유도 교육복지를 촉진하는 것이다. 임 교사는 2000년대 들어 부천지역에서 청소년 교육 관련 활동을 해왔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복지’ 사업이 도 단위에서 시험적으로 운용되자, 지역사회에서 ‘누군가는 교육 행정조직에 직접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임 교사는 이런 지역사회의 바람을 안고 2006년부터 부천교육지원청에서 ‘교육복지코디네이터’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임 교사는 이미 이 새로운 프로그램의 성과가 적지 않다고 본다. 면접 때 말문조차 잘 열려고 하지 않던 아이들이 조선족 친구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등 하루이틀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차츰 얼굴도 밝아지고, 말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경계’의 의미를 바른 방향으로 수용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다문화’는 좁은 의미였다. 하지만 조선족 재중동포 어머니가 살던 동북 3성에 온 아이들에게 ‘다문화’는 이전과 다른 더 크고 넓은 가능성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앞으로 한국과 중국이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자신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다른 친구들보다 높다는 것을 체감한 듯했다.
임 교사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취약계층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인 것도 이번 프로그램의 큰 성과로 꼽는다. 두 계층의 아이들은 모두 경계선상에 있지만,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마음을 여는 친구가 된 것이다.
<오녀산성 단체사진>
임 교사는 이런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교육기관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임 교사는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자녀들의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보편화돼 있는 등 ‘경계에 서 있는 아이들’의 교육에 큰 힘을 쏟는다”고 한다. 그런 교육 투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통합을 높이는 결실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임 교사는 이날 후속모임이 아이들 여행의 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임 교사는 우선 아이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경계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임 교사는 또 아이들의 어머니 모임도 꾸렸으면 한다. 지금까지는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들이 교육문제에 목소리를 크게 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학생들의 어머니들도 여행 후속 모임과 11월로 예정된 부천시교육지원청 보고대회 등을 통해 교육의 한 축으로 당당히 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임 교사는 그러나 무엇보다 부천 지역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이번 프로그램이 계기가 돼서 다문화, 취약계층 아이들 대상 교육복지프로그램이 다른 지역에서도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경계’에 눈 돌리는 지역이 많아질 때 교육이 더욱 가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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