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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픈스페이스연구소 홍정우


정성껏 향 사르니 그 연기 無窮花堂을 휘감는다.
70년 외로운 넋들 향길 따라 임하시니
빛바랜 사진속의 어린아이 늙은이 되어 눈물짓는다.
언제 다시 오마는 기약 못하는 마음 애달프기 그지없다.

지난 초여름이다. 동북아평화연대의 이상황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니, 올 가을에 후쿠오카에서 묘제를 올려야겠다. 쫌매 보자.’ 술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들으니 사정이 이렇다.

이재갑이라는 사진작가가 있는데, 그 행적이 기이하다. 96년부터 15년간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역을 후원도 없이 홀로 다니며,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흔적을 사진에 담아왔다. 왜정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와 어떤 이는 노무자가 되고, 어떤 이는 군인이 되어 전장으로 나갔다. 그 가운데 일부가 규슈 후쿠오카의 석탄광산에 끌려왔는데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고, 굶주려 죽기도 하고, 고향이 그리워 도망치다 맞아 죽기도 했다. 묘도 못쓰게 하니, 사람들은 죽은 이를 묻고 그 위에 광산에서 나온 자그마한 폐광석(보타이시)을 올려놓았다. 그것은 기르던 개나 고양이가 죽었을 때 매장하는 현지의 풍속이란다. 어찌된 일인지 고양이의 보타이시는 팔뚝이나 허벅지 만한데, 조선인의 보타이시는 주먹 만하다. 그 탄광은 일본 우익정치인으로 유명한 아소 전총리 집안의 소유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게 된 것은 이재갑작가가 후쿠오카를 다니다 만난 배동록선생을 통해서이다. 배선생은 강제징용인의 후손으로 보타이시 묘를 비롯한 조선인의 흔적을 발굴하고 자료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살아왔다. 그나마도 순탄치 않아 일본인들로부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멸시를 받으며 일을 해왔다. 지금은 70이 넘은 노인이 되었으니, 빛바랜 사진속의 그 아이다.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온 이작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년 전에 책이 되었다. “한국사 100년의~일본을 걷다”란 책을 우연히 읽은 김필수단장에게 책을 소개받아 읽은 이상황이사가 이재갑작가를 만나 함께 현지를 찾아가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자비로 함께할 사람들도 20여명은 될 거란다.

감사할 따름이다. 여유 되면 하겠노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일이나, 나아지는 것은 없고 세월만 가버린 터다. 걱정이 앞선다. 내 자신이 집례를 하기에는 부족하고, 한국 땅도 아닌 외국에서 제대로 된 묘제를 올린다는 것이 당장 제수와 제기부터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이 중요하다지만 준비하는 사람이 부실해 격식을 못 갖추면 그 또한 죄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일단 유교종단인 성균관을 찾아가 뜻을 전하고 상의하기로 했다.

9월 27일 새벽 6시, 일행들은 인천공항에 모여 인원을 점검했다. 한명 한명 귀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우리가 탄 버스가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의 시립공원묘역을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30여명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우리를 맞이한다. “無窮花堂”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은 두 번이나 강제 연행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배래선선생님이 지쿠호의 각 사원들에 방치되어 있던 동포의 유골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지쿠호지역 재일교포와 뜻을 같이하는 많은 일본인들의 힘이 더해져 1996년 '지쿠호 코리아 강제연행 희생자 납골당 추도비 건립위원회‘를 발족시키게 된다. 이즈카시의 공식 후원으로 공원묘역 한 곳에 만든 조선인 납골당으로 2000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118기의 유골을 모셔놓았다. 무궁화당의 단체명칭은 “NPO법인 무궁화당 우호친선의 회”라고 한다.

많이도 준비하셨다. 한국에서 제수목록을 정할 때 준비하기 어려울 것을 걱정하여 최소한으로 정하고, 그나마도 무리하지 말고 하실 수 있는 것까지만 하시라고 연락을 해둔 터이다. 무궁화당 앞에는 커다란 포장으로 자리를 만들고 제사상을 준비해 놓았다. 한눈에도 그분들의 지극한 정성이 보인다. 좌, 우집사와 축관이 중심이 되어 재빠르게 진설한다. 음식 가지 수가 남는다. 요청하지 않은 음식까지 많이 준비하신 것이다. 제상에 올리지 않으려니 준비하신 여러분의 섭섭한 표정이 역력하다. 얼마나 공들여 준비하였을까. 그래 올리자. 나물이며, 전이며 그릇 되는대로 올리자.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은 동북아평화연대 곽재환대표.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준비하셨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일본이나 한국이 한결 같다. 지방문은 한국에서 상의한 끝에 ‘강제징용조선인제신위’로 정하고, 축문에서 우리를 동포후손이라 칭했다. 엎드려 잔 올리고 절을 함에 공경을 다하니 묘제가 경건하다. 뒤늦게 제를 올리게 되어 만시지탄이나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흠향하시라는 황규식선생의 독축은 듣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두 번째 잔은 배동록선생이, 세 번째 잔은 무궁화당이사장으로서 많은 도움을 준 일본인 기류이사장이 올린다. 좌,우집사를 맡은 이상황이사와 이중모선생은 이런 묘제가 처음일터인데 막힘없이 잘 진행 해 주신다.

처음이라고 했다. 그전에는 물론 무궁화당이 생긴 이후에도 후쿠오카 지역에서 이와 같이 정식으로 묘제를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작가도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묘제이야기는 못들었다고 한다. 제가 끝나고 재일교포, 한국인, 일본인 할 것 없이 모여 앉아 음복을 하니 지난 세월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피어난다. 오늘 만큼은 강제징용조선인 영령들이 주인이다.
사진으로 보았던 인근의 보타이시 묘를 찾았다. 정말이다. 흔적이 가물가물한 자그마한 돌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는 그것이 묘라고 한다. 성묘를 하기로 했는데 어디에 잔을 두어야할지 당황스럽다. 한곳에 자리를 정하고 앞의 초헌이 예를 갖추는 사이, 좌,우집사는 나머지 묘를 돌며 잔을 올린다. 배동록선생의 아리랑이 구슬프게 울린다. ˹일본을 걷다˼에 수록되었던 그 노래다. 이곳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고향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이다. 

묘제가 격식을 갖추는데 성균관의 역할이 컸다. 처음에 상의를 할 때 흔쾌히 공식후원을 약속해주고, 석전대제(공자에 올리는 제사, 9월 말에 진행)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묘제에 사용할 제기를 내주었으며, 홀기에 관한 논의도 함께 하였다. 김동대사무처장과 모든 부장들께 감사드린다. 영주 선비문화수련 이상호원장은 유건과 도포를 내주셨다. 지방과 축은 초코파이 정으로 잘 알려진 양성주작가의 친필이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묘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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