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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으로 웃음 찾은 고려인 마마들

[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8-1>140년 강제이주의 아픔을 없애는 사회적 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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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공정무역의 날' 축제현장에서 고려인 마마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왼쪽이 황 비카 마마(33), 오른쪽이 강 나스챠 마마(50)


5월의 햇살과 녹음이 어우러진 9일 오후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공정무역의 날' 축제가 열렸다. 

축제가 무르익으며 난데없는 춤판이 벌어졌다. 30대 아주머니와 60대 할머니 예닐곱 명이 두 팔을 흔들며 경쾌한 스텝을 밟았다. 옆에서 쉬던 동료에게 '같이 추자'며 손짓도 했다. 

청국장 쿠키 등 각종 청국장 제품을 앞에 두고 깔깔 웃는 이들은 '고려인 마마'. 한국인과 같은 얼굴이지만 한국말보다 러시아어가 더 익숙하다. '마마'는 러시아어로 '엄마'를 뜻한다. 

동북아시아 재외 한인동포를 돕는 시민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의 김윤령 총괄부장은 "고려인들은 음악이 있으면 어디서든 모여 춤추는 걸 좋아한다"며 "휴대폰 벨소리 음악을 틀어놓고 춤출 정도로 신명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고려인 마마들이 이처럼 밝은 모습을 되찾은 지는 채 5년이 안됐다. 마마들은 "청국장이 없었으면 지금의 삶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140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한 사연= 고려인들은 1860년대부터 독립운동을 위해, 생계를 위해 연해주로 건너간 우리 조상들의 후손이다. 

1930년대 구소련은 '한인들이 적국 일본을 돕는다'는 혐의를 씌워 고려인 공동체를 해체했다.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 등 낯선 중앙아시아로 쫓겨갈 수밖에 없었다. 

1990년 구소련이 몰락하고 여러 연방으로 쪼개지고 난 뒤 고려인들은 옛 삶의 터전인 연해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반기는 이도, 일자리도 없었다. 

최 카차 마마(60)는 1998년에 우즈벡에서 연해주로 돌아왔지만 러시아 여권을 발급받기까지 10년 동안 이리 저리 떠돌아 다녀야 했다. 

딸과 사위가 인근 중국시장 점원으로 일하며 월 1만5000루블(60만원)을 벌었지만 월세와 유지비를 빼고 남는 돈은 5000루블(20만원)에 불과했다. 한국과 비슷한 물가 수준에 손자·손녀까지 다섯 식구가 그 남은 돈으로 버텨야 했다. 

1999년 우즈벡에서 연해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강 나스챠 마마(50)는 간신히 중국 시장에서 옷을 떼다 파는 일을 구했다. 하지만 나스차 마마에겐 옷을 파는 일 자체가 마음에 상처가 됐다. 

순박한 성품의 그로선 짝퉁 옷가지를 진품이라고 속여 파는 알량한 상술을 흉내내기 어려웠다. 장사는 접었지만 다른 일이 없었다. 다른 고려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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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마마들이 지난 9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공정무역의 날' 축제 현장에서, 자신들이 직접 만든 청국장 제품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북아평화연대가 이들을 돕기 위해 러시아로 왔다. 이 단체는 1990년대부터 고려인들의 정착을 지원해왔다. 이 단체의 도움으로 고려인들은 연해주 우정마을 등 6개 농촌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고국의 다른 단체와 기업들도 고려인들의 농촌 정착을 도우려 두 팔을 걷었다. 사회연대은행은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신용대출)로 4만 달러의 지원금을 댔다. 

삼성전자 등 한국의 대기업과 재외동포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비영리단체, 머니투데이·KBS 등 언론사들도 고려인 정착 과정에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이같은 지원으로 고려인 농업센터, 청국장 공장, 마을회관 등의 시설과 설비가 갖춰졌다. 

고려인들은 2006년부터 연해주의 무공해 청정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청국장 가루와 환, 쿠키 등은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바리의꿈이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바리의꿈이 청국장을 팔아 거둔 매출은 지난해 5억7000만원에 이른다. 

한국인들이 지원한 고려인 정착사업은 점차 성과가 확산돼갔다. 마이크로크레디트 첫 자금은 10가구에 지원됐지만 현재 청국장 제조에 참가하는 가구수는 33가구로 늘었다. 

김진영 동북아평화연대 관리부장은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연해주 농산물의 국내 판로를 확대해 고려인들의 참여 규모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청국장 위에 싹튼 꿈= 우정마을과 노보루사노프카, 치카일노브카, 크레모바, 아시노프카, 순얏센 등 러시아 연해주 6개 마을에서 온 7명의 고려인 마마들은 동북아평화연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날 공정무역의 날 축제에 부스를 마련해 참가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연해주에서 손수 만든 '바리의꿈 청국장' 환(丸) 제품을 찻술에 떠서 부스 앞을 지나는 이들에게 맛보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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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마마들이 지난 9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공정무역의 날' 축제 현장에서 자신들이 손수 만든 청국장 제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어눌한 한국말 때문에 힘들 법도 한데 마마들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손님들을 잡아 이끌었다. 손수 만든 제품을 고국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여서인지 힘든 줄을 모르는 듯했다. 

너무 힘들어서 밤마다 화장실에 앉아 울기도 했다던 나스챠 마마의 얼굴엔 이제 웃음꽃이 활짝 폈다. 오늘이 어제보다 나았기에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나스챠 마마의 꿈은 지금처럼 돈을 벌며 좋은 사람들과 평생 같이 지내는 것. 최근엔 또 하나의 꿈도 생겼다. 그는 "딸이 한국에 와서 공부해 나보다 더욱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며 미소를 지었다. 

바리공주님! 장도 든든 연해주 동포들도 든든하게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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