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황단 열차 여행에서 돌아와서
이혁(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열린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터로
나가면서 타는 7호선 지하철 열차에 눈을 감고 앉았을 때 규칙적 흔들림을 타고 있노라면 마음은 아직도
시베리아로 달리는 열차에 앉아 있는 듯 하다.
4명이 지낼 수 있다고는 처음엔 믿어지지 않던 너무 경제적인 공간이던 그 객실의 2층 침대 위에 베개를 높여 누워서 내 발끝을 너머 보이는 직사각형의 유리창을 통해 시속 80킬로 미만의 속도로 지나가는 풍경을 본다. 마치 누군가 비슷한
장면을 몇 분 간격으로 찍어서 자꾸 반복해서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복적이고 정적이다. 한
시간 이상 그렇게 창 밖을 응시하고 있으면 규칙적인 진동과 소음을 따라서 점차 최면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니, 이런 풍경과 이런 상황이 명상적이라고 할 정도다.
시베리아의 목초지처럼 보이는 초원은 자세히 보면 이름 모를
풀들과 보라색, 노란색, 흰색의 작은 꽃들이 점점이 박혀있고
그 위에 너무 날씬하게 하늘을 향해 있는 자작나무들, 그 사이를 지나는 작은 개울로 이루어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정물화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바이칼
호수가 나타났고 그 가운데 있던 샤먼들의 고향이라는 그 섬의 신성한 바위에 섰다. 동아시아가 현대사에서
어떻게 금이 그어져서 나뉘어졌다고 해도 수 천년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아주 짧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좁은 인식일 뿐, 종국에는 이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었다.
수 년 전부터 막연하게 횡단열차를 타겠다고 했던 내 속에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침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여행을
출발하기 전보다 조금 더 뚜렷하게 그것들이 보이는 듯 하다.
부산, 광주,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바이칼이 있는 이르쿠츠크를 거쳐 모스크바로 그리고, 베를린, 파리와 그렇게 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꿈틀대고 있다. 내 안에 대륙을 달리던 그 DNA가 있었음을 이번 여행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다시 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 당연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