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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꿈을 꾸다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개관 기념 2009 경기민예총 문화예술탐방
서종훈
 
▲ © 세종신문
 
10월 29일 속초항에 모인 경기민예총 회원 28명은 러시아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개관을 참관하기 위한 경기민예총 문화예술탐방의
6박 7일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 전날 속초에 가 있던 나는
 여유있게 속초항으로 나갔다.
 
오후 4시에 출발을 하기로 한 뉴 동춘호는 제시간에 출발을 하지 못하고 지연이 된다.
러시아 땅을 밟는다는 것보다는 발해의 옛 꿈을 쫓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조급했던지라, 하루 전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시간을 끌다니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이 대수랴,
기다리는 동안 수미협 박일훈 대표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분이 가져다 준
오징어 회무침으로 출발도 하기 전에 술자리가 마련이 되었는데.
아마 이제 떠나면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 딸딸하게 취하는 맛도 볼 수 없을 테니
그저 한 잔이라도 더 마실 수밖에.
 
뉴 동춘호는 일주일에 두 번 속초항에 들어온다고 한다.
평상시는 제 시간에 출발을 한다는데 이날따라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오후 6시에 부우~
 
 
▲ ©세종신문
 
하고 긴 여운을 끌며 배는 속초항을 떠났다.
17시간의 길고 긴 항해가 시작이 된 것이다. 배안에는 한국인 보따리 장사꾼들과
러시아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 이 배를 이용해
장사를 하다가 보니 낯들이 익은 모양이다. 우리 회원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를 하는 뉴 동춘호. 출발한지 여섯 시간이 지나
10월 30일로 접어들었다. 밤바다 위에서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30일이 지나자 배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토록 잔잔하게 달려오던 배인데 갑자기 돌풍이라도 부는 것인지.
어두운 밤바다가 여울이 지기 사작한다. 배의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흐린 불빛에 흰 포말을 뱃전에 때리고 도망을 간다. 배도 춤을 추고, 우리도 춤을 추고.
벌써부터 멀미를 시작한 회원들이 있다. 여기저기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린다.
소주로 여행길을 벗 삼은 나는 술김인지 멀미가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보면 역시 우리 소주라는 생각이다.
 
 
 
▲ © 세종신문
 
이런 주변을 보니 난리도 아니다.
너, 나할 것 없이 방(4인 기준의 침대와 온돌이 있는 1등석)으로 들어가더니
방바닥에 엎어진다.
그러기에 소주를 줄 때 마시지. 오전 11시 그렇게 요동치던 배도 잠잠해졌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인다. 드디어 자루비노항에 도착을 한 것이다.
입국 수속을 밟는데도 또 시간이 걸린다. 입국수속이 늦어지는 바람에
첫 행사예정지인 라즈돌리니에역까지 달려가는 수밖에.
시간이 없어 허기진 배를 차 안에서 빵으로 달래며 6시가 다 되어서야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려인 17만 명이 1937년부터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기 시작한 역인 라즈돌리니에역. 당시 일본에 협력할 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자행된 천인공노할 사건이 있던 아픔의 역이다.
스탈린에 의해 40여 일 간 대륙횡단 기차에 강제로 실려 이 역에서 떠났다고 한다.
약 3분의 1이나 되는 노약자들이 가다가 얼어 죽고, 심지어는 기차에서 떨어져
죽기도 했다는 죽음이 시작한 땅, 라즈돌리니에역.
 
 
▲ © 세종신문
 
 
 
우리는 첫 일정을 이곳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스러져 간 넋을 풀어주기 위해
추모굿을 벌였다. 지전춤으로 넋을 위로한 후에 망자들의 넋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길가름으로 절정에 다한 추모굿. 그리고 길을 가른 소창과 지전을 태워
바람에 날리는 재가 날아가듯 그렇게 훨훨 극락으로 날아 들어가기를 염원했다.
이곳에서는 조선인이나 한국의 방문객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다.
경찰들이 쫓아올 수도 있다는 말에 그저 숨을 몰아쉬며 벌인 추모굿이다.
 
이런 원혼들을 위해 우리 정부가 한 일이 무엇인가 묻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의 형제들에게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주었는가를 반성한다.
그렇게 발해의 꿈을 쫓아 떠난 첫날이 저물어간다.
 
10월 31일, 어제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도착을 하고 난 후 달라진 기온과 풍경 등으로 며칠이
훌쩍 지나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연해주에서 맞는 첫날.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어보니 밤새 눈이 하얗게 내였다. 이렇게 눈을 보고 있으면,
가족들이 먼저 생각이 난다. 여주에도 오지나 않았는지.
떠날 때 갑자기 날이 추워진다고 했는데, 수도는 얼지 않았는지.
집을 떠날 때마다 간수를 하고는 하지만, 어째 걱정부터 앞선다.
 
오늘은 우스리스크의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의 개장과 세미나 등이 있는 날이다.
서둘러 길을 나섰다. 기념식장에 도착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빅토르 고르챠꼬프 연해주 의회 의장을 비롯해, 연해주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이부영 위원장 등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
대회의실겸 공연장에서는 준공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9시 30분이 지나 시작한 세미나에서는 이부영 위원장의 개회사와 연해주 의회 의장,
정만기 인간개발연구원 원장의 축사로 이어지고,
동북아평화연대 황경석 운영이사의 진행으로 세미나가 시작이 되었다.
세미나는 이광규 서울대 명예교수와 연해주 의회 의장의 발제가 있은 후
질의 시간이 주어졌다. 잠시 휴식을 하고 난 후에는
 ‘연해주 농업과 고려인 이주민의 농업정책,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의 연결 필요성’ 등의 제목으로 세미나가 이어졌다.
 
▲ © 세종신문
 
오후가 되자 기념관에서는 공연이 펼쳐지고.
우리 일행 중에 화가들이 한인들과 러시아인들에게 캐리캐처를 그려주며 담소를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러시아 아가씨들은 시키는 대로 곱게 차리고 앉아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고. 피곤한 일정을 보낸 일행들도 그런 행복함에 함께 젖어 있었다.
문화란 어느 나라나 상통한다. 그래서 문화란 늘 이웃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우스리스크에서는 한 번도 이런 행사를 가져보지 않았다고 하니 우리도 뿌듯할 수밖에.
 
▲ © 세종신문
 
어디를 가나 행사 앞에 인사가 길면 맥이 빠지기 마련이다.
오후 4시 경에 시작을 하기로 한 축하공연. 먼 놈의 인사말이 그리도 긴지.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대수랴. 벌써 140년이란 긴 시간동안을 가슴에
한으로 피멍이 든 사람들의 한풀이쯤으로 생각을 하면 될 것을.
1시간이 넘는 인사말이 지루할 대로 지루한 사람들이 지친 표정을 지을 때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 날 공연은 예정 시간보다 훨씬 늦게까지 이어졌다.
 
 
▲ © 세종신문
 
▲ © 세종신문
 
북에서 파견 나온 무용가의 지도를 받은 아리랑무용단은 아름답다.
나이도 어리지만 춤을 출 때마다 절도 있는 동작들이 우리들과는 많이 다르다.
분단의 세월 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이질감을 느끼게 문화가 달라졌다.
그러나 그 안에 우리의 흥겨움이 같으니 어떠랴. 오고무, 부채춤 등
다양한 아리랑무용단의 춤과 원불교의 초청을 받은 부산아이들의 난타,
경기민족굿위원회의(위원장 이성호) 진도 북놀이, 우스리스크에서 사랑받고 있는 가수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우리가 우스리스크에서 느낀 것은 우리는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그 안에 끓는 피는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인들이 추는 춤과 노래. 그것은 분단의 벽을 넘어 이 척박한 땅
우스리스크에서 하나가 되었다. 미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뜨거운 피가 이곳으로 흘렀다.
그렇게 우스리스크에서 둘 째 날은 깊어가고 있었다.
 
▲ © 세종신문
 
 
▲ © 세종신문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여주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