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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5 21:55

군함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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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동평은 일본으로 1차 ‘평화탐방의 길’을 다녀왔다. 일본의 강제징용 현장과 원폭 투하지역을 다녀오는 것이 우리의 여정이었다. 일본에 도착한 첫 날, 데지마를 관람하고 둘째 날에는 군함도와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등에 가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우리의 주요 목적이었던 군함도에 다녀온 후기를 쓴다.



둘째 날, 아침 9시. 우리는 군함도를 가기 위해 군함도행 배에 올랐다. 배의 1층은 실내, 2층은 야외 옥상 형태였다. 군함도로 가는 풍경을 더 생생하게 보고 싶었기에,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우리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배를 타고 족히 30분은 걸리는 거리. 생각보다는 나가사키현과 꽤 거리가 멀었지만 가는 내내 풍경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배를 운전하는 항해사들도 가는 내내 마이크를 잡고 주변 풍경을 설명해주었다. 일본어로 설명해주어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현지 일본인들의 반응을 살피며 알아들으려고 애썼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이드였던 기무라 선생님도 우리에게 저 동상은 무엇인지 저 건물은 무엇인지 많이 가르쳐 주었다.



어언 30분을 달려오자, 멀리서 군함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는 모습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기 바빴다. 사진으로만 보던 군함도를 실제로 봤다는 사실에 흥분한 듯 보였다. 거친 바람과 파도 때문에 아쉽게도 군함도에 내리진 못했다. 하지만 군함도에 직접 내려서 탐방하는 그 시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길게, 배는 군함도 주위를 돌며 충분히 군함도를 느끼게 해주었다. 가까이서 본 군함도는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당시의 그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작아보였다. 또 폐허로 변해버려서 그런지 무섭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군함도에서 다른 섬 혹은 다른 육지로 가려면 꽤 먼 거리를 가야하는 것 같았다. 군함도를 가기 전에 공부한 내용에 따르면 이곳에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은 너무 힘들어서 바다로 탈출시도를 했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것은 탈출보다는 자살시도에 가까웠던 듯하다. 바다로 탈출해 다른 섬, 다른 육지로 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우리가 탄 배는 천천히 군함도 주위를 돌았고, 돌다보니 어느 순간 섬이 정말 군함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군함을 의도하고 만들진 않았을 텐데,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리고 또 신기했던 점이 하나 더 있었다. 폐허가 되어 회색빛을 띄고 있는 이 군함도에 초록빛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던 것이다. 그 식물들이 없었다면 이 군함도는 완전히 죽어버린 섬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이나마 생기가 도는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이 초록빛은 한쪽면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군함도의 앞뒤는 서로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식물들은 당시 군함도에 살던 사람들이 군함도의 땅에 나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나무를 심을 자리를 찾아 건물 옥상에 심은 것이라 했다. 앞으로도 군함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겠지만, 이 나무들은 평생 이 곳에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마음이 씁쓸해졌다.
군함도를 다 둘러보고 나가사키로 가는 길에, 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1층에 내려왔다. 시끌벅적하던 2층과는 달리 1층의 분위기는 참 조용했다. 앞에서는 당시 군함도에 살던 사람들의 영상이 담긴 vcr을 틀어주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그 영상 안에 강제징용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아마 어딘가에는 강제징용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있을 텐데 생각을 하며 괜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팜플렛에서도 강제징용의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을 걸 보고 비겁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틀어준 영상이 끝나자, 배 안의 직원들은 승객들의 자리를 돌며 군함도에 관한 물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에게는 아픔이 담긴 장소인데, 그 아픔을 숨기고서 상업적으로 이용을 하는 모습을 보니 군함도에서 돌아가신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조선인들의 한이 풀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담긴 군함도를 직접 내 발로 밟아보고, 그 아픔과 한을 같이 느껴보고 공유해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 굉장히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한국에 도착하니, 화나고 억울하고 분한 일과 마주하게 되었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는 소식이었다. 결과는 번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군함도에 갔던 그 날 군함도에 발을 내딛었었더라면 결과가 바뀌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과를 바꿀 수 없다 해도 우리는 계속 해야 한다. 군함도는 산업혁명의 유산이기 이전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곳에 강제징용 되어서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려야한다. 이것이 없었다면 군함도는 산업혁명의 유산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을까. 또 우리나라 사람들조차도 이 사실을 모르는데, 어느 외국인이 알아줄까. 그러니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서 화나고 분한 마음이 생긴다면, 그 뜻을 동평과 함께 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