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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서 만난 가장 우리다운 보금자리

MediPeace 캠프, 용산 민속촌을 보금자리 삼다

▲ 용산 민속촌 전경

MediPeace 보건 의료 캠프 1기는 캠프 기간 동안 용산 민속촌에서 묵게 되었다.용산 민속촌은 조선족 전통 가옥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 식사 전 빨래터 모습

몸은 쉬고 싶어도 빨래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오늘 빨래 한 옷을 바로 내일 입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진지한 회의가 방마다 열리지만 캠프원들은 어느 경우에도 활기를 잃지 않고 서로와 어울려 의견을 모아가는 법을 배워…

MediPeace 보건 의료 캠프 1기는 캠프 기간 동안 용산 민속촌에서 묵게 되었다. 용산 민속촌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수도인 연길에서 십분 가량 떨어진 곳으로서 이 곳 조선족의 전통 가옥과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이 이곳에서 숙박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먼 타국에서 우리 민족의 민속을 접하게 된 캠프원들은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의 심정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민속촌 시설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기상한 후 운동하고 밥을 먹는 아침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 이후의 강의 시간 및 조별 회의 시간뿐이지만, 캠프원들은 이곳에서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다.

식사는 한식을 기본으로 하는데, 개고기 음식이나 두부 무침 등, 이곳 현지 음식이 가미되어 여행지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사람, 새로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 모두가 만족할만한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식사는 푸짐하게 제공되어 캠프원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반을 남길 정도다.

1조 김영기 캠프원의 경우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캠프 기간 동안 평소의 절반을 먹기로 자신과 조원에게 약속하였으나 정작 이곳에 와서는 평소 이상의 식사량을 자랑하고 있다.

캠프원들이 다섯 시에 숙소에 돌아와 하루의 중노동에 지친 몸을 쉬게 할 틈도 없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공용 빨래터다. 식사 시간 전까지 빨래를 하고 옷을 널 시간을 내기 위해 빨래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기도 하는데, 내일 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더운 날씨로 인해 그 날 입은 옷은 그날 빨아야 한다. 한 조의 빨래는 게임으로 뽑힌 그 조의 한 사람이 벌칙으로 모두의 것을 하는 경우도 생기고 비가 올 경우 다음 날 캠프원 전부가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숙소를 나서기도 한다.

이 밖에도 캠프원들은 이곳에서 모기와 전쟁을 치르는 한편, 평소에 보지 못한 연변 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며 감상에 젖기도 하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새끼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밤에는 진지한 회의가 방마다 열리지만 캠프원들은 어느 경우에도 활기를 잃지 않고 서로와 어울려 의견을 모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남은 캠프 기간에도 용산 민속촌은 MediPeace 의료 보건 캠프 활동의 거점이 될 것이며 캠프원들에게는 새 식구인 연변대학생들과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문명기 기자

 

▲ 또 하나의 가족

이제 고양이 가족은 캠프원들에게는 가족이다. 새끼 고양이들 노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다.

 

칭찬이야기 오늘의 칭찬주인공 : 한재권 선생님

처음 뵈었을 때의 한재권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는데, 국장님의 Medipeace에 대한 설명과 1기 보건의료계열 학생캠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한재권 선생님의 조금은 당황하고, 걱정스러워 하면서 무언가 생각이 많은 듯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선발 스텝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자, 매일 같이 이러저러한 캠프관련 회의와 관련 정보 수집을 통해서 ‘MediPeace와 1기 캠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이 분이 그와 관련하여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작한 일에 대해 항시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하기란 더욱 힘든 것 같습니다. ‘MediPeace 1기 보건의료계열 청년캠프’. 어찌 보면 쉽게 여겨질 수 있는 단어이지만, 이러한 활동이 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이 분처럼 든든하게 보조해주는 버팀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노력하는 모습으로 캠프에 임하고 있기에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한재권 선생님과 같은 조이면서 익명을 요구한 모 양은, “언뜻 보면 틱틱거리는 투덜이 소덕후 같지만, 사실 그의 본 모습은 그의 체형만큼 포근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일에 임하며, 무리 속에 잘 융화되면서도 자신만의 색을 가진, 이번 캠프의 흐름을 조정하는 DJ, 선생님이 없었으면 이번 캠프는 음악이 끊긴 카페 같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칭찬릴레이의 주인공으로, 본 캠프단의 선발대로서 중국에 오기 3주전, 첫 여권을 갖고, 낯설은 중국에 거침없이 첫발을 내딛고, 13 시간 동안 소녀시대노래를 들으면서 힘차게 연길에 와서 많은 노력을 몸소 보여주신 분으로 제1기 보건의료청년캠프 스텝이신 한재권 선생님, 당신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김영기 기자

 

▲ 한재권 선생

 

Special : 이슬아 기자의 연변 읽기

연변 조선족 사회의 현재 구성과 형성 과정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구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길림성 내에 위치하며 주도(州都)는 옌지시[延吉市]이다. 이 곳은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렸다. 1952년 9월 3일 이 지역에 자치구가 설립되었고, 1955년 12월에 자치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옌지[延吉] · 투먼[圖們] · 둔화[敦化] · 허룽[和龍] · 룽징[龍井] · 훈춘[琿春]의 6개 시와 왕칭[汪淸]·안투[安圖] 2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조선족이 4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한족(漢族) · 만주족(滿州族) · 후이족[回族]의 순이다.

 

한민족의 중국 이주 과정

한민족의 중국 이주 역사는 한민족사의 시작과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민족의 혈통과 민족적 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른바 조선족의 시작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 여러 원인에 의해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조선족의 이주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청조에 의한 강제이민 시기(1620~1677) : 후금과의 전쟁과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의 과정을 거치며 수만 명의 포로가 발생하였다.

2. 범월잠입 시기(1677~1881) : 청나라의 봉금령에도 불구하고 파산한 농민들이 기아를 이기기 위해 청나라 영토로 잠입해 들어가 경작을 시작하고 촌락을 이루게 되었다.

3. 이민초간 시기(1882~1910) : 1875년 청조가 장기간 동변도 지역에 거주해 온 조선인들의 거주를 묵인하고 연변지구에 대한 봉금령을 취소함에 따라 더 많은 이주민이 발생하게 되었다. 1885년에는 두만강 이북에 “조선족 전문 개간 지역”이 지정되어 조선인의 이주를 더욱 장려하는 계기가 되었다.

4. 망명이민 시기(1911~1920) : 조선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이후 많은 우국지사들이 만주로 이동하였으며 한일 합방을 거쳐 3•1운동에 이르기까지 이주민 수는 점차 더 증가해 갔다..

5. 이민제한 시기(1921~1931) : 1915년 일본이 청조와 강제로 21개 조약을 체결한 이후 청나라 정부는 조선인들에게 청나라로 귀화할 것을 강요하였고 그에 더해 조선인에 대한 박해와 구축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몇몇 조선인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가거나 조선으로 되돌아 갔고, 많은 조선인들은 중국으로 귀화하였다.

6. 강제 집단이민 시기(1931~1945) : 일제는 동북지방에서의 식민 통치 준비가 확립되자 대륙침략의 병참기지 활용을 목적으로 1937년부터 조선인들을 북간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렇게 형성된 조선족 집단부락에서의 생활은 일본식민회사가 요구하는 높은 경작지 대여료와 이자율로 인해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한민족의 중국 정착 과정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일제에 항거하고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떠나온 사람들을 포함하여 절대다수가 가난한 농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무일푼으로 만주에서 정착을 시도하였으며 혹독한 추위와, 풍토병, 만주인 지주들의 착취와 일제의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한편, 만주의 조선인들은 이주 초기부터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워 조선의 문화적 전통을 전승하고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서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1926년에 이르러서는 간도 내에 191개교가 설립되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지역은 자연스럽게 민족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조국에서 일어난 3•1운동에 함께 하고자 중국의 조선인들은 3•13운동을 벌여 항일운동의 불꽃을 지폈고, 이를 계기로 만주 일대에 조선인들의의병군단이 표면화 되어 치열한 항일 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중국 내 조선인들은 지역 수호와 항일 전쟁, 해방전쟁 모두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신중국 건설에 큰 공헌을 했으며 이에 대한 공로로 중국 공산당은 조선족을 중국 공민으로 그 자격을 승인하였고, 신중국을 건설하는 핵심민족으로 인정하였다. 1949년 소수민족의 민족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종합대학인 연변대학을 설립하였으며, 1952년 9월 3일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건설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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