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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8월 23~27일까지 4박 5일의 일정으로 경기도교육청과 동평이 함께했던 
‘청소년 국제평화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평화캠프에 참가했던 학생이 오산시에서 열린 
'제7회 청소년 문학상’에서 수필부분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이에 학생의 글을 기재합니다.

 
 
 
대륙에서 꿈을 찾다
 
세마고등학교 2학년 5반 임하연
 
러시아의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톡. 구한말부터 한인들이 이주하여 신한촌을 이룬 곳이다.
돌 위에 올려놓아도 살 수 있다는 별명을 가진 고려인들은 1937년 자신들이 이룬 고향 신한촌에서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발점인 이 지역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고려인들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기차 안에 가둬졌다. 강제이주를 당할 당시 고려인들이 탄 기차는 화장실과 음식이 제공되지 않는 화물차였다. 순식간에 짐 실리듯이 억울하게 고향을 잃은 상심으로 많은 고려인들이 죽었고, 열악한 이주 환경 속에서 어린이와 노인들은 떠나갔다. 죽은 이의 사체는 간이역의 철도 위에 놓아둔 채로 기차는 달렸고, 고려인들은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 땀을 흘려 마을을 일궈냈지만, 그들이 원동이라고 부르는 연해주의 고향을 잊을 수는 없었다.
 
백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고향을 그리워하던 고려인들이 하나 둘씩 신한촌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의 이름은 ‘고향마을’. 경기도 교육청에서 주관한 청소년국제평화연수의 목적지가 그 곳이었다.
 
사실 나는 인천공항에 갈 때 까지도 러시아와 고려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연수단에 발탁되어 사전 연수를 받을 때에도 대륙의 핏줄을 만난다는 사명감보다는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들뜨기만 했었다. 내 머리 속의 러시아는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멀어서 갈 생각도 못 할 그런 이국적인 곳이었다. 그런데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 한국보다 더우면 더 더웠지 절대 춥지 않은 날씨와 생각보다 눈에 익숙한 풍경, 한국 버스와 한글 표지판 등 우리나라 시골과 비슷한 광경은 관광객의 마음으로 러시아에 들른 나를 실망시켰다. 연수 이틀까지는 블라디보스톡 시내 주변 관광을 했다.
 
입에 맞지 않는 느끼하고 짠 음식들과 이제 곧 무너질 것 같은 호텔은 평화연수의 목적을 잃은 채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더욱 배가시켰다. 그리고 그날 밤 시내에서 세 시간을 넘게 달려 한 마을에 방문했다. 주변에는 콩 밭 뿐인 작은 마을에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고향마을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마을을 구경하다가 우리가 잘 숙소에 짐을 풀고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밝게 웃는 모습이 우리네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노년의 여성분들이 경기도에서 온 청소년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었다. 어색했지만 분명 한국어를 쓰고 있었고 자식과 손자 모두를 데려왔는데 그들의 생김새 역시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고향마을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된장 공장의 책임자 ‘로자마마’ (마마는 러시아어로 엄마인데 마을 사람 모두가 아줌마의 이름에 마마를 붙여 불렀다.)와 대화를 시작한 직후 아는 것도 없이 무턱대고 연수에 괜히 참여했다고 투덜거리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로자마마는 고향을 찾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 강인한 여성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아들 둘과 살고 있는 아줌마는 나에게 ‘마리아’라는 러시아 이름을 지어준 뒤 그녀의 삶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렇게 힘들게 산 도중에도 고려인들은 딸에게 메주 쑤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그 방법을 잊지 않아 주변에 넓은 대지를 사서 콩밭을 이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기농법으로 된장을 만들고 있다. 언어로도, 음식으로도, 그들은 한국을 잊지 않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핍박과 고통 속에서 조국을 갖지 못한 채 살았던 이들도, 러시아의 국적을 가지고 러시아어를 쓰며 한국에 가보지 못한 이들도 모두 다 정신적 고향을 한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는 관심 한 번 갖지 않고 해외의 선진 문물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던 나를 고려인들이 한 민족이라고 생각해준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의미가 깊었던 이번 평화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숙제가 생겼다. 나의 뿌리를 찾아보는 일이다. 세계에 널리 퍼져 살고 있는 우리의 민족들은 고려인 뿐 만이 아닐 것이다.
 
역사의 고통 속에서 흘러간 이들도 있을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떠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계에 한국을 알리기 전에 제대로 한국을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일민족이라고 부르던 우리 민족은 세계화에 흐름에 맞추어 다문화 민족이 되어가고 있다. 한 민족이었을 때도 알지 못하던 우리의 핏줄을 알아보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나 자신을 알고 다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기 위해서 한국의 얼을 가진 이들을 찾아봐야겠다. 이번 연수로 인해 정말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려면 나를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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